가끔 전하는 소식/2021년

일상의 이모저모

뜨락에 내린 별 2021. 5. 22. 02:34

밤 소쿠리에 생쥐 드나들듯 했던 브런치를 덮어 둔지 한 달이나 되었다. 정서 불안인지 마음이 뒤숭숭하고 일이 손에 걸리지 않았다.  활자를 들여다보는 일은 더더욱 집중이 되지 않아 브런치를 열었다가도 이내 닫아지고는 했다. 봄이라 그런가 했다. 아무래도 봄은 항상 싱숭생숭하고 마음을 들뜨게 하니까 그런 줄 알았다. 봄 탓은 아닌 것 같고 압박감으로부터 느껴지는 불안함이 원인인 듯하다. 의료기관에 가면 의례적으로 하는 질의응답이 이제는 익숙하다 못해 지겨워진 일상이다.  기계적으로 질문하는 자는 속사포 랩을 하는 것 같고, 대충 듣고  "No, No, No" 대답하는 내 자세도 형식적이긴 마찬가지니 그런 생각 들 수밖에.

 

얼마 전 병원을 다녀온 친구가 무겁게 전해 준 한 마디에 "아~~' 하고 짧은 신음이 내뱉어졌다. 다른 나라 방문 한 추적 기록은 3개월 이전이었고, '펜데믹' 이후는  2주 전 방문 기록을 물었었다. 그런데  <2주 전에 다른 주(州)에 갔다 왔느냐>는, 외국이 아닌 자국 내의 행동반경을 묻는 강도 높은 질문으로 바뀌었다니 체감하는 불안감이 급 상승했다. 3차 봉쇄 기간이 풀리는 6월 2일은 제발 변동 사항 없기를 바라며 지내는 요즘이다.

 

닥쳐봐야 조금 전의 시간이 "그나마 다행이었네" 하는 후회를 하는 것처럼 지금 현재의 이 순간도 감사해야 하는 건가? 하는 물음을 무겁게 달고 드디어 백신을 맞으러 갔다. 그 믿음은 주삿바늘이 팔에서 빠져나오는 순간부터 뻐근한 느낌으로 팔 전체에 퍼졌다. 하루 지난 오늘은 팔이 어깨 위로 올라가지 않는다. 심한 근육통처럼 좀 아프다. 기막힌 세상에서 백신만이 답이라고 생각하는 마음 이어서일까? 오히려 통증이 마음의 안정을 주어 아픔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꿈도 꾸었다 펜데믹 종료 선언이 뉴스마다 알리고 있고, 나는 한국행 티켓을 쥐고 보딩 하고 있는 줄에 서 있는 내 모습도 보았다.  


 

백신이 내 몸 구석구석 퍼져나가고 나를 지켜주는 파수꾼처럼 여겨져 안심이 되었는지 모처럼 깊은 단잠을 잤다. 눈 뜨자마자 팔에 느껴지는 통증에도 기분이 좋아지는 이 아이러니에 웃음이 난다. 블라인드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해님의 빛은 거칠지도 사납지도 않고 부드럽게 와닿는다. 좋은 징조 아니겠는가. 블라인드를 걷고 창 밖을 내다보았다. 얼마 만에 이 맑고 따듯한 햇빛을 느껴 보는지 집안의 문을 죄다 열고 햇볕을 끓어 들이고 나는 마당으로 나갔다. 초록 초록한 나뭇잎을 올려다보려니 눈이 부셔 고개를 떨구고 말았더니 발 밑에서 예쁜 아이들이 자잘 자잘하게 피고는 수줍게 웃었다.

 

봄이 오는 듯하다가 아니 오고 여름이 와 버렸으니 봄 꽃 들이 어리둥절한 가 보다.  눈물 같은 아침이슬 달게 마셨는지 꽃들이 얼굴 들고 나에게 인사한다. 갓 태어난 아기같이 보들보들한 꽃 대위에 살포시 피어있는 난쟁이 꽃 앞에 앉았다. 내 숨소리에 꽃잎을 툭 떨굴까 봐  숨도 크게 쉬어지지 않는다. 키 코고 우람하게 피는 꽃보다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작은 꽃이 이리도 좋을까. 한 뼘 키의 꽃 앞에 쪼그리고 앉은 나는 거인이다.

 


 

그동안 브런치를 기웃거리지 않았더니 간기 없는 반찬을 먹는 것처럼 사는 맛이 확실히 싱거웠다. 창가에 앉아 비가 오면 비를 보고, 바람 불면 바람 소리를 들으며 매일 나뭇가지 저리 흔들다가 몸살 나지나 않을까 튼튼한 나무만 걱정했었다. 서리에도 풀썩 주저앉고 마는 꽃들도 있었는데 그런 아이들은 챙겨주지 못했다. 그런 아이들이 예쁘게 색을 올리고 꽃잎을 활짝 열고 거인 같은 나를 마주해 주고 반겨주니 미안하고 고마웠다. 꽃 얼굴에 그늘지지 않도록 해의 방향을 보고 비켜 앉으니 혈색이라도 돌 듯 꽃 색들이 빛이 난다.

 

햇빛 한 모금으로 생기 도는 꽃처럼 나도 몸을 돌리고 해님에게 얼굴을 마주하니 비로소 찬란한 5월임이 실감이 되었다. 꽃들에게만 애정을 쏟아 주다가 내 눈길 없이도 알아서 자라준 마늘에게도 가서 "사랑한다는 말 없어도 사랑하고 있음"을 알아달라며  미안해서 변명하는 마음으로 들여다보았다. 고랑 사이사이에 삐죽거리고 올라온 잡풀들도 뽑아 주고 물도 흠뻑 주었다.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줬으니 이제 마늘은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 같다.  그 추운 겨울을 나보다 더 잘 이겨낸 마늘이 대견하다.

 


 

예쁜 아이들을 귀찮게 하는 풀들을 뽑아주느라 모종삽 들고 왔다 갔다 했더니 머리꼭지가 뜨거웠다. 어느새 반나절이 지나간 것도 몰랐다. 해님이 머리 위에서 그만 쉬라고 하는 것 같아 집안으로 냉큼 들어왔다. 쌉쌀하고 씁쓸하게 커피를 내려 달콤하게 마시고 있는데 " 나는?" 하며 나를 부르는 아이가 있었다. "아 부겐베리아"

여름 나라에서 온 부겐베리아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듯 사무치게 꽃을 피운 지 꽤 오래되었다. 자세히 보지 않아도 예쁜 꽃을 관찰하듯 자세히 보고 있는 사진 속의 손자처럼 부겐벨리아를 또 쭈그리고 앉아 들여다보았다. 너의 그리움 알 것 같아 하는 우러나오는 마음이 꽃에게 가 닿았다. 그렇게 느껴졌다.

 

이 집에 한 해 두 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처음으로 꽃가지에 가시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장미과도 아니고 분꽃과라는데 가시 있는 것을 신기해하며 어디가 분꽃을 닮았는지 쭈그리고 앉아 보고 또 보았다. 분꽃 속에 씨앗 들어 있는 것처럼  꽃 속에 수술인 것 같은데 분꽃 씨를 닮았다. 아니면 말고... 더운 나라에 가면 잡풀만큼이나 흔하게 보던 꽃이어서였을까 내 집에 오래 있어도 그저 그랬던 아이였는데, 올해 처음으로 자세히 보고 마음으로 보고 예쁘다고 해 주었다.

 

고향을 떠나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 잃지고 꽃 피우는 부겐베리아가 오늘따라 정말 예쁘게 보였다. 나는 이 국에 살면서 가족들도 형제들도 뿔 뿔이 흩어져 살아야 하는 처지가 외롭고 또 어떤 때는 처량하다며 궁상을 떨 때가 많다. 태어난 곳을 떠나 사는 같은 처지의 부겐베리아처럼 아름다운 모습은 아닐지라도 식구들이 염려나 하지 않도록 몸도 마음도 잘 간수해서 정정한 노인이 되어야겠다. 백신도 맞았으니 그래야겠다. 이제 그럴 나이지 않은가.

 

꽃들하고 놀며 젊어졌다 생각했던 하루는 가고, 어둑한 밤개구리 울 소리 이불속으로 뛰어 들어와  " 깨셔"

 

 

 

 
 
 

 

 

 

 

덧... 

숲 속 작은 집, 이 곳에서는 콩알처럼 작은 꽃들이 옹알옹알 거리는 꽃 이야기를 바람에게 전해 듣는 답니다. 많은 새들도 한 목청 해서 조용한 날이 없기도 하지만 덕분에 외로워할 새는 없지요. 물론 귀찮게 따라다니는 벌레들도 많기는 하지만요. 한 가지 좋으면 다른 한 가지는 내주어야 하더군요. 이 곳을 방문해 주신 모든 작가님들께 제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저 꽃들을 다발다발 묶어 한 아름 마음으로 보내 드립니다.

 

저 꽃이 지고 나면 마당에 나갈 일 없을 것 같았는데 라벤더를 새 식구로 들였어요. 라벤더에 코를 묻고 싶을 만큼 향을 좋아합니다. 라벤더 팜이 비즈니스로 각광받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라벤더 향이 첨가된 생산품이 엄청 비싸서 든 생각이었어요. 저 작은 폿트 말고 필드에 심어진 라벤더를 달라고 했죠. ㅎㅎ 심자마자 바로 꽃 보고 싶어서요. 사장님께서 저 작은 애들 심으면 내년 여름이면 저만큼 자란다네요. 라벤더 몸 값이 $10 이래요. 라벤더 비즈니스 할 만하지 않아요? 5 폿트  사 왔는데 다음에 또 가니까 문 닫아서 그 애들이나 잘 키워야 할 것 같아요. 꽃은 올여름에도 볼 수 있을 거라 하긴 했거든요.

 

건강하시고 언제나 행복한 시간들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