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전하는 소식/2021년

청개구리 너처럼 나도 운다.

뜨락에 내린 별 2021. 3. 19. 08:06

첫 손자의 유치원 졸업과 초등학교 입학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런 눈물부터 고인다. 손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는데 가슴속이 푹푹 끓고 있는 엄마 생각이 난다. 눈꺼풀이 무거운 것도 아닌데 내리 닫지 못하고 눈을 깜빡거리면 고였던 눈물 쏟아질까 눈 잔등을 위로 추켜올렸다.  < 자식이 효도하고자 하나 어버이가 기다리지 않는다 >라는 말은 분명 나를 두고 고전에 새겨 놓은 것만 같다. 이 명언을 대할 때마다 두고두고 지난날을 후회하는 어리석음이 거침없이 당당했던 어깨를 꺾이게 한다.

 

유치원 과정을 마쳤다는 것만으로 대견함이 벅차고 넘치는데, 혼자서 교문을 들어서는 아들은 차마 그냥 볼 수 없어 주책스럽게 눈물 바람 했다는 며느리의 말은 내 가슴을 때렸다. 초등학교 입학식을 마치고 나란히 줄을 맞춰 담임 선생님을 따라가는 알록달록한 긴 줄에서 내 아들을 발견하고 가슴이 뛰어 목을 늘여가며 아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던 때도 생각이 났다. 그때에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부모가 되어 보아야 부모 속 안다던 엄마의 말은 물론 엄마의 마음도 떠올려 보지 않았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 사랑은 없다는 말로 위로를 얻어 보지만, 엄마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결혼을 선택한 나를 들추어 보면 그런 식의 위안을 갖고자 하는 것은 실로 염치없는 일이다.

 

내가 첫 아이 학교 들여보낼 때의 이런 감정과 지금의 며느리의 폭풍 감동을 생각해 보면, 그 옛날 첫 딸을 국민학교에 입학시키며 부풀었을 엄마의 마음은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그런  엄마의 분명했던 목적과 동기를 알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딸이 2월 생이라는 점을 놓치지 않고, 우정 읍사무소까지 달려가 막 7살이 된 딸의 취학 통지서를 받아 왔을 때 나를 쭉 늘려서 대학 사각모를 씌우고 싶었다고 했다. 이런 상상을 했던 엄마의 역량을 따지면 과욕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의지적인 엄마의 가슴에서 자라고 있는 희망이고 꿈이라고 해야 옳다. 진즉에 지금처럼 생각했더라면  엄마의 기대와 먼 유년기를 보내지 않았을 것을.

 

 

길어진 수명으로 백수 하시는 분들이 많아지는 요즘으로 생각하면 한 세기는 그리 긴 시간도 아니건만 왜 그때는 일찍 생을 달리 하시는 분이 그리 많았는지, 나의 외 할머니도 그중 한 분이었다.  엄마의 부재는 큰 올케의 눈치 밥을 먹고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시집을 가라고 떠밀었던 둘째 올케 언니의 등살보다 더 견디기 버거웠다고 했다. 선생이 될 거라며 월사금을 세명의 올케에게 돌아가며 애걸했던 엄마에게 "이 놈의 가시내" "이 작궛이.." 이란 욕만 돌아왔다고 했다.  발칵 역정을 내며 마당 빗자루를 집어 들던 올케 언니의 부라림을 모면하느라 해가 지도록 장독 뒤에 숨어 울다 잠들다를 반복했던 처녀 시절의 엄마는 이때부터 꿈을 꾸었으리라. 

 

내 자식을 낳으면 이를 악물고서라도 공부시키겠다는 엄마의 결심은 돌덩이 같은 굳은 마음 이었었을 게다. 울음도 끼니를 굶는 것도 냉랭한 올케들에게 약발로 먹히지 못하고 이름 석자만 아는 나의 아버지에게 시집을 가고 나를 낳았으니 말이다.  < 부모는 나를 낳아 기르시느라 평생 고생만 하였다 > 덧 붙일 말이 필요치 않는 명심보감의 이 한 구절이 나보다 엄마를 더 알아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나는 무안하고 한없이 작아져 쥐구멍마저도 크게 느껴진다. 

 

 엄마가 이루지 못했던 교육에 대한 서러움을 첫 딸이 닦아 줄 거라는 엄마의 기대감을 국민학교 입학식 첫날부터 나는 어그러지게 했다. 세월이 많이 지난 후에도 엄마는 나에게 속상했던 감정들을 끄집어낼 때면 잊지 않고 이런 나를 꺼내곤 했다. 일 학년 신입생들이 운동장에서 반 별로 서서 윷가락을 들고 노래 부르며 율동을 배우고 있을 때 나는 뒤에서 선생님의 동작을 따라 하지 않고 우두커니 서 있거나 한 눈을 팔았다고 했다. 50년이 지난 그때의 기억을 재생하던 엄마의 감정은 지난 이야기 웃으며 하는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나의 자격지심 일 수도 있겠지만 가슴 밑바닥부터 밀어 올리던 엄마의 감회는 딸을 생각하는 속상함이기보다 원수를 향한 원망에 가깝게 들렸다.

 

 

어떻게 되어 먹은 아이로 태어났기에 지나가던 스님이 당신 딸 내가 데려다 키울 테니 달라고 했을까. 스님의 요구에 기 막혔던  엄마는 나의 타고난 운명을, 먹기 살기도 벅찬 살림에 돈을 줘 가면서까지 파헤치기 시작했다. 두 부모 섬기겠다는 악담 같은 말을 듣고도 포기할 수 없는 딸이라는 천륜 때문에 평생을 긴장감으로 살았던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 줬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엄마, 나는 정말 괜찮아.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친구들이 타고 가는 버스는 비싸? "

 

통학 거리가 짧아 스쿨버스를 이용할 수 없는 학교의 규칙을 모르는 손자가 며느리에게 하는 질문이다. 친구들처럼 대형버스로 하교하고 싶은 부러움을 엄마가 섭섭해하지 않도록 배려 담아 말하는 손자의 마음에 나는 그만 잠시 말을 잊지 못했다. 아직 세상을 겪어 보지 않은 아이의 마음속에서도 저렇게 엄마의 마음을 가늠할 줄 아는 말을 하는데, 나는 엄마에게 어땠는지 돌아보면 정말 머리를 쥐어뜯고 싶다.

 

한 번 끝난 생명은 부활을 끝으로 다음 생은 없다고 하는 성경을 믿고 살아왔지만, 불교의 재 탄생의 윤회를 믿고 싶을 때가 있다. 사후 일을 누구래서 짐작이나 할까마는 딱 한 번만은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말이 툭툭 튀어나올 때가 그때이다. 돌이킬 수 없는 이 시점에 와서 엄마의 딸로 다시 태어 나는 기회를 갖고 싶은 간절한 마음 가져 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하는 마음 품어나 보는 것 이외에 달리 할 바가 없으니 허망하기만 하다.

 

때 늦게 이런 생각하고 있는 나는, 동화 속 청개구리와 다름이 없다. 지난날을 후회하며 밤새 우는 청개구리 너처럼 나도 운다. '개굴개굴' '개굴개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