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끌어당기는, 네모진 사과 뚜껑을 열어 본다. 반응이 없다. 이불속에서 후회부터 한다. 마른날 미리 설치해 두었으면 좋았을 것을, 미루고 미루었던 안일함의 결과는 배로 용을 쓰면 문제는 없다. 몸이 싫어하는 해결책이기는 하지만, "뭘 그 정도 가지고" 머리가 한 마디 한다.
해가 갈수록 머리가 시키는 일에 몸의 불평도 늘고, 생각을 우습게 여기는 불순함으로 맞짱 뜰 때가 많아졌다.
그런 몸을 다스리는 것을 머리가 포기하고 내 버려두지만 결국 몸이 항복하게 하는 것이 있다. '상황'이다.
상황은 계획적이라고 할 만큼 불편함을 만들어 내고, 아주 가볍게 몸을 움직이게 하는 한 판승을 거두고 만다.
얄미운 것 같으니라고...
오늘처럼 하늘이 안 보이도록 눈이 내리는 날은 오지나 다름없는 곳, 일어나기 싫어 이불을 좀 더 끓어 당겨 보지만, 이 불 속이 더 이상 포근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LAN' 영역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니 무리를 잃고 고립무원에서 우는 외로운 기러기가 된 것 같아 두려워졌다.
눈이 그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창밖에 시선을 둔, 눈의 꺼풀만 껌뻑 껌뻑하고 있다. 팝콘 냄비에서 무더기로 펑펑 쏟아지는 팝콘보다 큰 눈송이들이 나무 위에 푹푹 주저앉는다. 키 작은 관목들은 이미 묻혀 사라지고, 여린나뭇가지들은 축축 늘어져 고단해 보인다. 난무하는 눈송이들을 오래 보고 있으니 눈이 어지럽다.
하늘은 보이지 않고 이 오두막을 파 뭍을 기세로 몰아치는 눈 폭풍이다. 거친 야생의 자연을 관람하는 사파리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조마조마하다. 나도 모르게 이불을 쥐어 잡고 사파리룩 인양 단단히 여미고 있었다. 탄성을 지르고 싶도록 스릴감도 일으켜 세우는 환상적인 저 풍경, 생활에 불편함을 주어도 눈 오는 날을 싫어할 수 없는 이유다. 외로움을 잊고 눈보라에 빠져 든다.
환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다,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영화 '김 씨 표류기'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 원근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내린 백설 위에 'HELLO'를 남겨야 할 수도 있다. 밤섬에 갇힌 주인공이 모래사장에 'HELP'가 아닌 'HELLO' 여야 하였던 것처럼 말이다. 무리에서 이탈되어 홀로인 기러기는 외로움을 느끼기도 전에 두려움부터 앞선다. "기럭기럭" 인공위성에 쏘아 올리기 위해서 지붕 위로 올라가야만 한다.
부들부들 떨지 않을 다리 근력을 위해 이불을 걷고 주방으로 나갔다. 무슨 흥이 저리 많아 춤을 추는 것처럼 저리 눈이 내릴까. 오트밀 끓이겠다고 냄비 꺼내는 일을 그만두고, 눈 쏟아붓는 것을 다시 보고 있었다. 전나무에 더불 더불 붙어 있는 눈 꽃송이가 활짝 피어나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낭만적인 아침에 폼 안 나게 지붕에 올라가야 하다니, 정신이 확 깬다. 오트밀을 포기하고 커피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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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무슨 맘먹고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만두를 만들고, 애플파이를 굽고, 욕심스럽게 옥수수 케이크까지 만들었을까? 열흘의 크리스마스 휴가가 한 일도 없이 쓰윽 지나간 것이 억울했던 모양이다. 어제의 그 노동 시간을 쪼개어 오늘의 게으름에 나누어 주니 마음이 편해진다. 변명도 핑계도 가지가지다. 아니다 이상한 시기가 길어지다 보니 온전한 정신일 수가 없다.
향긋하게 우려진 커피에 흰 꽃 녹아내린 듯한 크림을 넣었다. 어제 만든 옥수수 케이크 두 조각을 접시에 담아 식탁에 앉으려다, 먹이통이 비었다고 다람쥐가 쌩 성화 부리는 통에 새 먹이통부터 먼저 채워 주었다. 고소한 커피 한 모금 입에 무는 순간, 전나무에 피어 있던 흰 꽃잎이 후드득 무더기로 지고 말았다. 개 코처럼 먹이통의 씨앗 냄새를 맡은 딱따구리가 전나무 가지 속에서 조심성 없게 튀어나오다 그리됐다.
해바라기 씨앗을 물고 날아가는 작은 새들, 먹이통에 주저앉아 씨앗을 열심히 까먹고 있는 다람쥐, 우리는 마주 보고 앉아 아침을 먹었다. 다리 근력이 두 배쯤 생긴 것 같긴 한데, 여전히 내리는 눈만 구경하고 있다.
사람들이 이리 오래 접속이 끊어진 내 소식이 궁금해 하기는 할까? 'LAN' 선에서 사라진 나의 존재감을 허전해하거나 알고는 있나? 외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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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도 지나가고 펄펄거리던 눈도 내 편의를 봐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잠시 멈춰 주었다. 기회를 놓칠 세라 무장을 하고 나갔다. 하늘에 닿을 만큼 쭉쭉 늘어나는 접이 사다리를 창고에서 질질 끌어냈다. 반으로 접혀 있는 것이 길기도 길다. 빗자루를 무기처럼 쥐고 지붕을 올려다본다.
눈에 눈이 부셔 잠깐 올려다 보고 사다리 흔들어 보는 걸로 돌다리 두드리는 시간을 단축했다. 올라가다 떨어진데도, 쌓여 있는 눈더미 속에 발바닥 닿는 시간의 속도를 측정해 보니 어지간한 매트리스보다 안전해 보여 겁도 나지 않는다. 지붕 위에서 바라보는 자연은 고혹적이다. 지붕 눈 위에 정자 삼아 앉아 '아다모(Adamo) 흉내를 내어 불러본다.
통베 라 네이지 트네 비엔드라 나빠 수와~
대충 샹소옹 샹송~ 굴려 본다
Tombe La Neige
눈이 내리네
오늘 밤 그대는 오지 않겠죠
눈이 내리네
나의 마음은 검은 옷을 입고 있죠
이 비단과 같은 행열
모든 것은 하얀 눈물 속
나뭇가지 위의 새는 절망하듯 울부짖고 있어요
그대는 오늘 밤 오지 않으리라고
절망은 나에게 외치죠
아직도 눈이 내려요 저렇게 태연스럽게
Tombe La Neige
지붕에서 내려 오려다 접시 안을 들여다보며 말을 건넸다. 'HELOW' 내 신경 줄에 세상 끈을 연결시키는 신호 감지가 찌리릿 전해진다. 갑갑한 놈이 송사한다고 지붕에 올라간 놈의 애씀이 짠한 보람으로 느껴진다.
다시 한번 확인한다. 'HE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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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기후 관계상 겨우 겨우 일주일 만에 이 글을 올리며, 겸하여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현재 어떤 일이 중요하신가요. 부디 그 중요한 일을 2021년을 여는 순간부터 이루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이 곳에 알게 모르게 다녀 가신 모든 불친님들 한 분 한 분마다 연하장을 보내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해가 바뀐지 보름이 지나기는 했지만 구정까지는 새해 인사 드려도 되는 기한이라 여기고 인사 드립니다.
올 해도 듬뿍 복 받으시고 건강 하셔요. 코로나 조심 하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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