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전하는 소식/2023년

억지 웃음이라도 어쨌든..

뜨락에 내린 별 2023. 1. 3. 05:54

해마다 해보는 새해 다짐은 두서너 개의 항목이 추가될 때가 있기는 하지만 매 년 별 변화가 없다. 변화 없는 이유는, 작심은 하나 3일을 넘기지 못하면서 그렇다고 포기는 안 되는 것들을 매년 리스트에 올려놓기 때문이다. 자기 계발을 위한 종목은 해내지 못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생각을 할 뿐만 아니라 아주 익숙한 일로 이젠 안타까운 마음도 갖지 않는다. 이런 나를 질책하는 등의 스트레스를  전혀 안 느낄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그래도 잊지 않고 결의를 한다는 것'에 방점을 찍기로 마음을 먹으니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다. 또 살아 있는 동안은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당연한 덕목들을 아예 성품으로 굳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적는 내용이 있어 'resolution'이 변하지 않는다. 올해는 한 가지 추가한 항목이 있다.

 

나는 가끔 실컷 울고 싶을 때가 있고 반대로 눈물이 나도록 웃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두 행동 모두 기분이 좋아지는 같은 호르몬을 분비한다고 한다. 울고 웃는 일이 건강과 직결되어있는 감정이라는 것을 믿지 않을 수 없다. 혼자 있으면 웃을 일이 거의 없는데, 올해는 '억지웃음이라도 어쨌든 웃어 보자."라고 결의 리스트에 올렸다. 또박또박 쓰고 느낌표까지 그려놓았다. 써 놓은 것을 읽어 보다 그렇게 기대할 것이 없나 싶은 짠한 마음이 들어 그냥 웃었다. 또 한 번 크게 웃고는 노트에 적자 마자 이렇게 곧바로 실천을 했다는 것에 홀로 감격해했다. 웃음이 자꾸 샌다. 이 한 번의 웃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걸 보니, 역시 실천 가능성 있는 작은 것으로  희망 사항으로 정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웃음보가 일단 한 번 건드려지니 두뇌 어딘가에서 파장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귓바퀴 쪽으로 늘어난 입 꼬리가 그대로 유지되는 미소는 오래 지속하게 했다. 두뇌는 그 웃는 감정을 유지하도록  '윤 모촌의 수필 '식자우환( 識字憂患)을 꺼내 주었다.  읽었던 당시 그때처럼 웃는 것을 보고 싶다고 재촉이라도 하는 것처럼 빠르게 기억을 되살리게 했다. 

 

수필가 윤 모촌(尹牟邨)은 자신의 필명으로  '모촌(牟邨)'을 쓰면서 자전에도 없는 글자라며 무슨 글자인지를 묻는 문의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어려운 글자의 이름을 가지면 부모덕에 글 좀 배웠나 보라는 빈축을 살 수 있다고 했다. 문자를 알게 되면 걱정이 따른다는, 인간만 가질 수 있는 문자의 역기능의 불행을 서술하기 위해 '식자우환'을 예로 들었다. 

 


 

  옛날 어느 고을에 부모덕에 글 깨나 배운자가 있었는데, 어느 날 처가엘 갔다가 그 자의 장인이 호랑이에게 물려 가는 것을 보게 된다. 알아들을 리 만무한 마을 사람들에게 아래와 같이 외치는 장면을 상상을 해보라.

 

원산대호(遠山大虎)가 자근산래(自近山來)하여 
오지장인(吾之丈人)을 착거(捉去) 하니   
유창자(有槍者)는 지창이래(持槍以來) 하고   
유궁자(有弓者)는 지궁이래(持弓以來)하고  
무창무궁자(無槍無弓者)는 지봉이래(持棒以來) 하여     
오지장인(吾之丈人)을 구지(求) 하렸다. 

이 구원의 요청을 풀어보면 이렇다. 

먼 산 호랑이가 가까운 산에서 나와
내 장인을 물어 가니
창을 가진 사람은 창을 들고 나오고
활을 가진 사람은 활을 가지고 나오고
창도 활도 없는 사람은 몽둥이를 들고 나와 
내 장인을 구하라.

 

 

"호랑이가 나왔다."라고 한마디만 해도 마을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창 들고 몽둥이 들고 했을 행동인데 저리 유식하고 장황하게 명령을 하는 바람에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나는 눈을 감고 그 현장의 구경꾼이 되어 상상력을 동원해 그 장면을 그려보았다. 미소만으로는 부족한 감정의 소리가 성대를 지나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장인을 호랑이가 물고 사라진 후에도 끝나지 않을 긴 외침, 외치는 자의 장인이 이미 호랑이 밥이 되는데도 "뭔 소리래?" 하는 표정으로 웅성대는 마을 사람들의 표정이 나의 웃음보를 터뜨렸다.

이 소식을 들은 고을의 원이 그 자를 잡아다가 꾸짖으며, 볼기를 쳤다. 

 

"네 이놈! 또 그런 문자를 써서 불효를 저지를 테 냐? 
"아야둔야(我也臀也) 갱불용문자호(更不用文字乎)
아이고 볼기야. 다시는 문자를 쓰지 않겠습니다.

 

볼기를 치다 말고 원은 탄식하며 "식자우환이로다" 했다 한다. 수필 속 작가는 누가 지어낸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지식인을 잘 비꼬았다고 했다. 요즘은 상식을 넘은 지식이 넘치는 시대다. 전문적인 분야를 제외하고서라도 교양을 갖추고 지식으로 무장한, 식자들이 얼마나 많을지는 통계 없이도 짐작이 된다. 

 

다시 또 읽게 된 이 수필은 여전히 나를 웃게 했다. 다만 첫 번째와는 달리 웃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나는 'resolution'에 추가로 다짐 하나를 적어 넣었다. '잘난 척, 아는 척 절대 금물' 다행히 나는 잘난 것도 아는 것도 없어서, 오늘 "억지로라도 웃어 보자"를 쉽게 실천할 수 있었던 것처럼 무난하게 지킬 수 있는 다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새 해 첫날을 맞는다. 

 

 

 

윤 모촌의 수필 '식자우환( 識字憂患)'에서 인용문 가져 옴.

Pixbay 사진 사용